서핑 보드를 끌고 파도와 씨름한 하루.
양양 바다에서 보낸 시간은 늘 짧게 느껴진다.
물에 온몸을 맡기고, 중심을 잃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바람과 파도에 익숙해지는 순간들.
서핑이 끝나고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은 반대로 충만했다.
그 여운을 안고 찾은 양양 해변 근처 횟집 수조 앞, 싱싱한 해산물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흔히 보는 조개와 가리비뿐만 아니라,
넙치, 쏨뱅이, 광어, 우럭, 그리고 이름 모를 생선까지.
정말 바다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
신선함이 입안에서 벌써 상상되는 듯했다.
노을이 하늘을 천천히 물들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을빛이 내 얼굴에 닿을 때,
문득 내가 참 잘 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점점 짙어졌고,
해변에 달린 조명은 작은 축제처럼 나를 맞아주었다.
멀리 보이는 해변의 조명들, 캠핑 텐트, 그리고 불빛에 반짝이는 바다.
모든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시간,
자연이 주는 고요와 자유로움 속에서
복잡한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밤.
파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그저 부딪히고 떠올랐다가 다시 부딪히는 것.
인생도 그렇게 반복되는 것 같았다.
뭔가를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한 번 떠내려가 보는 거.
하루가 이렇게 선명하게 남을 수 있을까?
양양 바다 위에서 파도와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서핑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몸을 움직였다는 성취감보다,
아무 생각 없이 파도에 몸을 맡겼다는 그 ‘순간’ 자체였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차분해진 바닷가에 앉아 조용히 하루를 되새겼다.
바다에서 한껏 자유로웠던 나,
그리고 해가 지는 순간의 나.
둘 다 참 괜찮았어.
오늘의 나에게
“수고했어”라고 말하고 싶었다.